교토에서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점심에는 일식, 저녁에는 이탈리안을 가기로 했습니다. 교토를 대표하는 이탈리안이야 한군데밖에 없으니 선택이 매우 쉬웠습니다만, 일식은 워낙 명점이 많기에 어디를 가야할지 망설여 지더군요. 고민을 하며 몇군데 리스트를 찾아놓고 가기 일주일 전에 연락을 했는데, 제 판단이 좀 모자랐네요. 상위 몇몇의 예약 곤란하다는 소문이 도는 집들은 벌써 예약이 다 차서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아마도 가보고 싶었던 집 리스트의 5위쯤에 올랐던 이 집으로 결정했습니다. 이 집의 예약이 가능했다해도 상위 레벨의 집들 사이에 큰 맛의 차이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아마 동선이라든가 가격대 성능비 때문에 (1~2천엔의 예산차이 정도) 평가가 약간 낮았을 뿐일듯합니다.
켄닌지라는 기온에서 매우 가까운 절의 바로 옆에 있습니다. 뭔가로 유명한 절인듯한데, 아시다시피 교토에 그런 절들이 워낙 많아서 말이죠. 입구에서 느껴지는 포스와 기모노를 입고 나와 반갑게 맞아주시는 안주인 분의 호의에 교토에 왔음을 실감할수 있었습니다. 관광지의 식당에서 바라는 그것이 교토만큼 잘 지켜지는 곳도 없을 듯합니다.
부정함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죠. 이런 세심하고 아기자기한 연출은 단지 관광용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내려온 전통이겠죠. 매일매일 손님을 맞기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느껴지더군요. 그런 전통이야 말로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 아닐까 합니다.
이 집은 예약을 할때 코스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저희는 주류 포함 5000엔이하 예산의 미니 카이세키 세트를 시켰습니다. 교토의 맛집을 이번에 많이 리뷰했는데, 5000엔 이하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집이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더군요. 그래도 그 정도 부터는 가격에 만족할 만한 요리가 나오기에 비싸다고할수는 없겠습니다. 사실 이번에 음식이 너무 잘 나와서 미니카이세키 시킨걸 후회했답니다. 이정도 수준이라면 조금비싸더라도 정식 코스를 먹었어야 했습니다.
또한 교토 요리의 특징인듯한데, 주류 이외의 메뉴판이 없습니다. 모든 요리는 주방장 오마카세입니다. 그래서 음식 설명이 이번엔 매우 부실할 듯합니다. 모든 음식이 보이는 것보다, 그리고 설명하는 것보다 더 맛있었다는 것은 주의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들어오자마자 2층의 작은 개인실로 안내되었습니다. 4~6인실 정도 되는 크기였고 창문밖으로는 아주 작은 일식 정원이 보이더군요. 밖이 비올듯한 – 실제로 비도 온 날씨여서 더 그런지 실내가 차분하고 아늑한 느낌이였습니다.
따뜻하게 오차 한잔으로 시작.. 저는 차를 안마시기에 맛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채는 계절감에 맞게 나가이모의 소멘이 나옵니다. 면이라기 보단 거의 묵같이 생겼더군요. 잘게 빻은 신선한 오쿠라가 차갑게 식힌 소멘의 덤덤함을 신선함으로 채웁니다. 장식도 단정하고 이쁘구요. 작은 요리에 이 정도의 정성을 들였다면 일류 프렌치에 못지 않습니다. 교토에는 일년에 최소 두번씩 오는데도 – 매번 혼자 오는지라 이런 집을 방문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요. 이번에는 가보지 못한 다른 맛집들도 기회가 되면 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차갑게 칠링된 니혼슈가 이렇게 얼음에 담겨져 나옵니다. 카이세키, 특히나 교토다운 쇼진료리가 나오는 집이니, 도쿠베츠 준마이 정도는 마셔줘야죠. 한입 마신 친구가 이렇게 맛있을줄 몰랐다고 하네요. 저도 칠링이 이렇게 잘된 니혼슈는 간만입니다. 보통은 냉장고에서 꺼내주는 걸 그대로 마시는 정도니까요 사실 너무 차가우면 향이 약간 죽긴하는데, 술만을 즐길때는 문제가 되겠지만, 요리의 반주에는 이 정도가 적당합니다.
맛차의 두부, 우엉, 그리고 교토답게 두부가 들어간 찜 요리입니다. 두부의 안에는 콩과 매실이 들어있더군요.. 쇼진료리답게 육류는 일절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담백한 맛이 일품입니다만, 지방질이 적다고 싫어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모야 말로 교토의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이죠. 약간 꼬들꼬들 할 정도로 데쳐나오는 갯장어에 매실소스를 찍어 먹을때의 그 상쾌한 청량감은 여름의 별미라고 할수 있습니다. 양이 작아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건 내년을 기약해야죠. 그 동안 몇번이고 제대로 된 하모를 먹어보려 했는데, 이제서야 기회가 되는군요. 뒷쪽에 있는 생선은 마구로입니다. 사실 여름에 내올만한 맛있는 생선은 하모와 마구로가 유일할테니 제대로 된 선택이라고 할수 있죠.
졸임 음식입니다. 토마토, 엔도, 호박 등등이 들어갔습니다. 뒷쪽은 후유우리같은데, 한국엔 없는 채소입니다. 어떤 요리든 수준이 너무 높습니다. 좀더 비싼 코스를 시켰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물론 이 아쉬움은 다시 저녁에 만회할 기회가 있으니 큰 걱정은 없습니다만..
미니 카이세키라서 인지 벌써 코스의 끝이 보입니다. 술은 이때쯤 한병 비웠구요. 정식 코스였다면 다시 한병더 주문했겠지만, 약식이니 이정도로만 합니다. 보이는 대로 하나 하나의 요리가 개성적인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하모의 튀김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중간의 빨간 구체는 산딸기같더군요. 이렇게 하나 하나 만드는데 들어갈 정성을 생각하면 장인 정신에 감탄하게 됩니다. 굳이 교토에선 프렌치나 이탈리안에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정식코스의 마지막이니 밥이 나옵니다. 밥위에 올려져 있는 것은 산쇼치리멘이라고하는데, 치어를 말린것에 산초를 넣은 것으로 교토의 지방 명물입니다. 역앞에서 관광객들 상대로 파는 것하곤 수준이 다르더군요 ^_^
미소시루가 나옵니다.
정갈한 반찬입니다. 내륙지방에 위치해있는 교토에선 예전부터 절임류가 발달했습니다. 간단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교토밖에서는 이정도 레벨의 절임을 먹기가 쉽지 않답니다.
수박과 깨 아이스크림 등이 들어간 디저트입니다. 마지막까지 교토와 여름이라는 계절의 두가지 테마를 잃지않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참으로 만족스러운 식사였습니다. 올 가을에 다시 올텐데, 아마 그때도 혼자일테니 ㅠ.ㅜ 이런 집은 무리겠지요. 앞으로 이런 즐거운 요리를 여유롭게 즐길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