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의 맛집하면 바로 떠오르는게 기타노에 모여있는 프렌치 레스토랑들입니다. 고베다운 아기자기한 세련됨이 요리나 인테리어에 반영된 이런 레스토랑들은 고베를 데이트, 혹은 그저 관광의 목적으로 방문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같이 간 친구의 예산에 상관없이 괜찮은 집을 골라달라는 주문에 그 중에서 가장 멋진 곳을 찾아갑니다.
그라시아니 공작의 저택이였는데 개조해서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있답니다. 생각보다 아주 크진 않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좁았습니다. 인테리어로만 보자면 동경의 화려한 인테리어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못미치긴 하지만, 그래도 웨이팅을 위한 공간이나 바도 있어서 식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용이 가능한데다, 접객 스태프의 친절함이나 서비스의 수준도 상당히 높기에 그랑메종이라 불리워도 손색 없었습니다.
그랑 메종답게 스탭분이 문앞에서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데이트코스로 이용하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이 레스토랑 부근이 이인관이라고 예전 외국인들이 많이 살던 거리입니다. 고베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죠. 영국관, 프랑스관, 네덜란드관도 있지만 바로 근처에는 모스크도 있으니 다양한 문화가 하나의 거리에 공존해 있던 셈이죠. 이국적인 풍경에서 맛보는 프렌치는 그 나름 특색이 있더군요.
분위기 좋은 2층의 창가자리로 안내받았는데, 이미 세팅이 끝나있었습니다. 플레이트부터 이쁘네요. 문양이 있는 유리를 보니 예전 보스켓타에 갔을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중에 나오는 그릇들도 하나하나 이뻤습니다. 그랑 메종 급이면 이정도는 신경을 써 줘야죠. 하지만 남자 둘이 가기엔 좀 과분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주변엔 전부 커플이였다는.. 아.. 나도 이런 집은 데이트로 왔어야 했던 것인데.. 사전 탐사 기간이 예정외로 계속 길어지고 있습니다.
치즈처럼 생겼는데 맛을 보니 그냥 버터 맞네요.
따끈한 빵이 나옵니다. 맛은 그냥 그냥..
버섯은 일본산 버섯을 썼는데, 평범했습니다. 맛이 없는건 아니고 기대에 못미쳤다는 것이죠. 마구로는 마구로의 치어를 썼다고 하는 듯한데, 신선하긴 했지만 그냥 마구로맛입니다.
에다마메의 블랑망제와 생선의 파리 소와르 콘소메 쥬레를 곁들여
한마디로 감자스프.. 였는데,. 식감이 차가워서 여름에 먹기 아주 좋더군요. 여기부터 호감도 급상승입니다.
향이 아주 좋았지만, 이 가격대의 와인이 다 그렇듯 바디감이 부족했습니다.
포와그라의 포와레 둥근 가지의 프릿트와 구운 옥수수 붉은 된장 풍미의 레드와인 소스 섬머 트뤼프를 얹어
제가 포와그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지겨워서.. 보통 좀 잘한다는 양식당을 가면 포와그라가 꼭 나오는데, 조리법이나 재료의 질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렇게 계속 먹다보면 어느 순간 질리게 됩니다. 메인의 스테이크도 그렇구요. 그 집만의 특별함이 없는 요리는 가급적 안나와줬으면 하는게 제 바램입니다. 아니면 일부러 멀리서 찾아간 의미가 없으니까요. 이번 요리도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나진 못했네요. 제가 첫 데이트로 이 집에 왔다면 매우 만족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않아서 말이죠.
코치의 그리에와 여름 아채의 바냐카우다풍 에르브 샐러드 졸인 토마토 육수의 따뜻한 비네그렛트
코치는 광어류의 생선을 말합니다. 제 입맛엔 이쪽이 훨씬 나았습니다. 생선의 선도도 좋았구요.
브루타뉴 산 오리의 로티 검은 깨 복숭아의 세지르와 프로마쥬브랑을 얹어 빵데피스 풍미
검은 깨를 바른 오리고기를 단 맛이 나는 소스에 찍어 먹으니 괜찮습니다. 좋은 재료를 쓰진 않았지만, 좋은 요리법입니다.
800엔 플러스치곤 이것도 매우 평범한 스테이크 였습니다. 전에 갔던 이그렉의 스테이크 쪽이 훨씬 나았습니다. 분위기나 서비스에 비해 맛이 약간 부족하네요.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싼 메뉴를 시켰을때 보통 이런 일이 있습니다만, 이날 점심 코스가 와인까지 합치면 만엔은 했단 말이죠.. (뭐 그랑 메종인데 만엔이면 싸단 거겠죠.)
디저트 전의 입가심용 디저트입니다. 아이스크림 매우 좋습니다. 이쯤해서 디저트 와곤이 옵니다. 정말 와곤이 올줄 알았는데, 그정돈 아니고 그냥 큰 플레이트에 케익을 십여종류 담아서 내오더군요. 케익의 생김새가 너무 평범해서, 이게 뭐야.. 첫날부터 대 실패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슴뿔 모양이 인상깊었던.. 물론 저는 티를 안마십니다만..
제가 셀렉트한 크림뵐레, 머위가 들어간 키쉬비슷했던 케익. 근데 디저트가 나오면서 이 집에 대한 평가가 급반전했습니다. 달고 부드러운 푸딩에 바삭한 캬라멜까지 제 평생에 이렇게 완벽하게 발란스가 잡힌 크림뵐레는 처음이였습니다. 평범한 듯해 보이는 메뉴의 완성도가 너무 대단해서 왠만한 프렌치의 디저트보다 훨씬 감동적이였습니다. 그 옆의 케익도 카스테라 같은 일본식 달걀말이보다 더 부드러웠습니다. 앞으론 고베의 디저트를 절대 얕보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체리파이와 쇼콜라케익입니다. 체리의 선도가 장난아니네요. 케익반 체리반입니다. 이렇게도 맛있는 케익이 존재하는구나.. 쇼콜라 케익도 역시나 완벽한 밸런스입니다. 쓰거나 단맛에 지나침이 없습니다. 보통 그랑 메종급의 레스토랑은 전문 파티시에를 두고 최상의 디저트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있을테니, 단지 디저트 만을 위해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지 정말 아쉬운건, 생긴게 별로여서 디저트 와곤중에 겨우 네개만 시켰다는 겁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전 종류를 다 맛보는 것인데 ㅠ.ㅜ 후회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보통의 레스토랑이라면 시판하는 다과를 사서 내오거나 했겠죠. 하지만 이 집의 다과는 하나하나가 왠만한 전문점에 가서도 맛볼수 없는 수준이였습니다. 따로 테이크아웃 해오고 싶었다는.. 점심부터 조금 비싼 돈을 내긴 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점심때 간다면 좀더 싼 코스를 시켜서 디저트에 집중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아예 비싼 코스를 시키던가요.
이탈리안이건 프렌치건 남자 둘이 가면 과분하지 않은 레스토랑이 어디 있겠음? T_T
메인이 너무 평범해서 인상적이었다는 것과, 디저트가 너무 특출나서 인상적이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또 가려느냐고 묻는다면 노. 데이트가 아닌 이상은 분위기가 넘 부담됨.;;; 하지만 디저트 뷔페 같은게 있다면 만사 제처두고 당장 달려가야 할 레스토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