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소설은 일본 소설이면서도 미국 소설같은 느낌이 납니다. 어찌보면 존치버에 잭 케루악을 섞은 후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유머를 올린 듯한, 시크한 스타일이 맘에 들어서, 고교시절부터 자주 읽었습니다. 후기작으로 갈수록 이런 분위기는 레이먼드 카버의 진중한 분위기로 바뀝니다만.. 어쨌든 어렸을 때는 그런 가벼운 이야기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제 쿨한 성격은 그때의 경험에서 온 것일지도..
하루키 소설속 시간적 배경은 대부분 대학교 시절 이후이고, 고등학교는 가끔 등장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고향에 대한 묘사가 많이 있고,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살짝 상경전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특히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서 주인공의 고등학교 생활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에전부터 어떤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살짝 궁금하긴 했는데, 작가의 사생활에 그리 큰 관심은 없는지라 그런가보다 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기획하면서 하루키가 고베의 아시야시출신이고, 하루키의 모교가 몇 정거장 떨어진, 산위에 자리잡은 고베 고등학교라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록코산에서 고베 중심가로 가는 길에 위치한 지라 시간을 잠시 내어 들려봤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고베 항구
소문에 듣던대로 정말 산을 깎아서 만들었더군요. 완전 계단식.. 고베시내와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에다 클래식한 건물이 늘어선 학교였습니다. 국경의 남쪽.. 을 보면 LP판으로 원반던지기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고등학교를 보니 이해가 가더군요. 멀리 날아갈거 같았습니다. 참고로 제가 나온 대학도 저런 식으로 만들어졌기에 (게다가 서울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까지!) 뭔가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근데 제가 다닌 학교에는 다 쓰러져가는 건물은 있어도 클래식한 건물은 없었습니다. 여학생도 별로 없었고..
안쪽은 이런..
관계자외 출입금지라 들어가진 못하고 밖에서만 찍었습니다.. 주말이라서인지 – 아니 방학이라서 겠지요 – 학생이 한명도 안보였습니다.
운동장과 고베 시내
그리 크거나 시설이 좋아보이진 않지만 산위에 운동장을 만든 것엔 경의를 표합니다. 그 덕에 전망이 더욱 멋져진듯 합니다. 야경이 어떤지 몹시 궁금했지만, 어차피 비도 오고 있고, 시간도 별로 없었습니다.
런던탑이라는 별명의 교사
1935년에 준공된 건물이랍니다. 학교자체의 역사도 115년이나 되었으니 자연스레 고풍스러울수 밖에요.
등교길
대충 경사가 이렇습니다. 고베에 산다면 16살에 오토바이면허를 따서 타고 다니면 편리할뿐 아니라 인기 짱일 듯합니다. 항구로 여자애를 데려가서 고베 포트타워앞에서 데이트를 하면 재밌을 듯 싶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바에서 여름내내 땅콩을 까며 맥주를 마시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 합니다.
학교 입구
산이다 보니 입구가 한개가 아닙니다. 이 입구가 나름 정문에 젤 가까운거 같습니다.
교직원 전용 건물일까나..
가장 아래에 위치한 건물입니다. 강당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기엔 좀 규모가 작아보였습니다. 이날 비가 와서 그렇게 열심히 관찰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진 않았습니다.
아래에서 본 운동장..
그냥 찍어봤습니다.
교회 종탑처럼 생겼네요
이런 건물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있는 건물을 만든다는게 어떤건지 생각하게 됩니다. 싸게 만든다고 다 좋은게 아니죠.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야할 건물이면 그만의 매력이 있어야죠.
확대샷
학교방문을 여행스케줄에 넣는게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오랜만에 하루키 책이나 복습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같은 불경기 시대와는 잘 안맞는 버블 시대의 문학이라, 아마도 젊은 새대들은 별로 감흥이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