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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사카의 프렌치 슈만

화이트 데이를 맞아 싱글인 친구들과 아카사카에 있는 슈만이라는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을 방문했습니다. 예전부터 다들 맛있다고, 특히 와인과 함께하는 식사가 환상이라고 하는 곳이여서 꼭 확인차 가보고 싶었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기회가 되었네요.

글라스 샴페인

식전주로 시켜봤습니다. 맛은 좋던데 무슨 샴페인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가격표를 보니 한 잔에 1560엔이던데, 조금 비싸더라도 날이 날인만큼 버블로 기분을 내야죠. 나이들어 싱글인것도 서러운데 맛있는 거라도 잘 챙겨 먹어야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 집은 워낙 코스 요리가 저렴하기에 이 정도는 마셔줘야 예의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화 장식

가게 규모는 크지 않은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더군요. 이 자리에서만 꽤 오래 식당을 한듯한데, 어느 한 곳 흐트러진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서비스의 타이밍도 절묘해서 식사하는데 불편함을 느낄 새가 없었던 점도 맘에 꼭 들었습니다.

테이블 차림

가게가 작아서인지 테이블도 작고 테이블간 간격도 그리 넓은 편은 아닙니다만, 실제로 식사에 크게 문제되진 않더군요.

버러

이건 유염이였던 듯

전날 방문한 오레키스에 비하면 좀 못하긴 했지만 괜찮은 수준이였습니다.

드디어 메인 식사에 들어가는 데, 저희는 6개의 전채중 두개 선택하는 3900엔 짜리 메뉴를 시켰습니다. 메인은 생선/육류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전채를 한개 선택하는 메뉴는 2800엔이고, 쉐프 오마카세 코스는 5300엔입니다. 나중에 보니 10% 봉사료가 붙더군요.

어뮤즈 부쉬, 베이컨과 소금이 들어간 마들렌

쁘티푸르인줄 알았는데, 어뮤즈 부쉬로도 나오는 군요. 따끈하고 짭짤해서 적절히 식욕을 돋굽니다.

아오모리산 송아지 내장요리, 오늘의 조리법으로

컵에 있는게 내장이고 바깥은 다진 고기인데, 각각 재료의 풍미를 잘 살려 조리되었습니다. 양도 만족스럽더군요.

신양파의 푸딩, 새우의 향과 차가운 빨강피망의 풍미

양파의 단맛을 잘 이끌어낸 요리였습니다. 젤리같은 말랑한 식감과 토핑된 피망이 프레시한 봄의 맛을 연출합니다.

이 집의 시그네쳐 요리, 당근의 무스와 콘소메 젤리, 우니를 넣어

시그네쳐 요리라고 해서 기대하고 주문했는데, 기대를 월등히 능가합니다. 당근의 은은한 단맛에 고소한 바다내음의 우니의 맛, 거기에 포인트로 진한 젤리의 맛까지 더해지니 그 부드러움과 우아함이 실크를 녹여낸 듯하네요. 이게 과연 3900엔 코스에 포함된 요리의 맛이라는 겁니까..

쯔끼지에서 엄선한 계절 식재료의 오도블, 시이타케의 파이, 호타루이카, 등등

서비스 스탭이 하도 자신있게 권해서 부담없이 시켜본 계절 요리입니다. 사소한 재료 하나 하나가 전부 최상의 맛인데다, 시이타케의 파이에는 버섯의 향/맛이 그대로 농축되어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파이가 버섯을 맛있게 먹는 궁극적인 방법이였다니, 이날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배웠네요.

죽순과 북해도산 호타테 무스의 뜨거운 파이 구이, 파래김 소스에

이것도 파이인데, 죽순이 메인입니다. 이것도 불만 하나 있을 수 없이 완벽하게 구워져서 이른 봄에 느낄수 있는 사각거리는 죽순의 풍미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 먹어보니 이 집 컨셉이 잘 이해가 안가더군요. 이렇게 질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쓴 요리를 어떻게 그렇게 싼 가격에 제공 할수 있는 건지 말이죠. 열심히 와인 팔아달라는 이야기겠지요.

돼지새끼 넓적다리 민치 고기의 롤 캬베츠 바스크 풍 특제 스프에

아무도 안 시키길래 제가 시켜봤는데 조리상태나 맛이나 다른 메뉴에 비해 떨어지는 것 없이 높은 수준이였지만, 스프라는 한계로 인해, 그리고 계절메뉴가 아니라는 한계로 인해 좋은 점수는 못주겠더군요. 딴 식당에서 나왔다면 맛있게 먹었을 텐데 말이죠.

오늘의 고기 요리

전채가 저렇게 멋지게 나왔는데, 메인이라고 떨어질리는 없겠죠. 그치만 고급 재료를 쓴 요리는 아니더군요.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내장요리의 일종이였습니다. 맛있긴 했는데, 전날 먹었던 오레키스의 메인에 비하면 재료의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였습니다.

오늘의 생선 요리, 홋까이도산 마스

이건 제가 시켰는데, 간이 약해서인지 역시나 보기보다는 그냥 그랬습니다. 절정의 생선구이를 코드도르에서 먹은 후로는 왠만한 집은 그냥 그렇습니다. 후유증이 오래가네요.

디저트, 바나나 크레이프로 싼 아이스크림

간단해 보이지만 맛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바나나의 맛이 그대로 담겨있더군요. 크레이프가 따뜻한 편인데, 사진 찍느라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베스트의 상태가 아니였다는 안타까움이..

허브 티

여기까지 먹고 마시니 벌써 3시간 쯤 흘렀네요. 나가기 위해 계산서를 보니 인당 6600엔이 나왔습니다. 다른 레스토랑의 수준과 비교해 볼때 매우 경쟁력있는 가격입니다. 물론 아끼자면 좀더 아낄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멋진 음식이 나오는 집에서 얼마 아끼는게 큰 의미는 없을껍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해야죠. 다만 이 집 와인 셀렉션이 그렇게 환상적이라고 하던데, 전날의 과음으로 인해 시키지 못한게 마지막까지 아쉽더군요.

정문

다 먹고 나오니 담당 분들이 배웅을 해주시네요. 맛뿐만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동경 최고 수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집이 작년까진 미슐랭 원스타였는데, 올해 리스트에서 빠졌더군요. 대체 이 정도 레벨의 맛집이 안들어가는 이유가 뭘지 정말 궁금해 지더군요.

훌륭한 레스토랑에서의 즐거운 만찬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는 거 같습니다. 이래서 레스토랑 순례를 멈출수가 없는 거 겠지요. 이번엔 싱글인 친구들을 겨우겨우 불러내서 갈수 있었지만, 다음엔 누구랑 가야 할래나..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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