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원래부터도 바빴지만, 최근엔 그 바쁨이 몇배 증폭된 듯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몇달을 살다보니 인생에 남은게 일하고 미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 미식도 최근에 너무 소홀히 한 감이 있더군요. 그래서 간만에 제대로된 맛집을 가기로 결심하고 찾아간 곳이 동경 시로가네타카나와에 있는 전통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인인 코트도르입니다.

정문

왠 주텍가 맨션의 1층 안쪽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위치가 매우 독특해서 지도를 보고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2주전이 아니면 예약이 안될정도의 엄청난 인기를 자랑합니다. 이번엔 운좋게 3일전에도 자리가 있었는데, 장기간 계속되는 연휴때문이였을 듯 합니다.

가볍게 글라스 와인

요즘은 왠일인지 레드보다 화이트가 땡기네요. 같은 값이면 화이트쪽이 좀 더 질이 좋으니까요 ^_^ 물론 보틀 와인을 시킬수도 있긴합니다만, 점심에 마시기엔 좀 오버죠. 옆자리의 혼자 온 아저씨가 보틀을 한병 시켜서 홀짝 홀짝 마시는 모습을 보니 저는 저렇게 늙지말아야겠다는 생각도-_- 잠시 들더군요. 그리고 이 집의 컨셉인거 같은데 소믈리에 겸 모든 스태프가 나이가 좀 있는 남성분들입니다. 전부 친절하시고 서비스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저로서는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도 여성분들을 위한 배려일까요..

전채

첫번째 음식부터 이 집의 특징이 잘 드러나더군요. 바겟빵에 위에 새우와 치즈가 올라간 요리인데, 무슨 맥주안주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빵은 따로도 나오는데, 전채를 빵으로 한다는 것도 납득이 잘 안갔구요. 그렇게 별 기대도 안한 요리인데, 먹어보니 금방 납득이 갑니다. 코를 가득 채우는 진한 새우의 향과 살짝 자극적인 단맛의 잘 녹혀진 치즈와 바삭한 빵의 조화. 단순하면서도 완벽하더군요. 이런 스타일의 요리가 있을 줄이야.. 디스플레이에 집중적으로 신경쓰는 여타 프렌치와 전혀 다른 길을 추구하는 집이라는게 첫번째 접시에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나네요. 화려함을 추구하는 미슐랑의 평가를 거부한 이유를 그제서야 알겠더라구요.

버터

여타 레스토랑과 달리 아무 장식이 없는 버터입니다. 그렇기에 부담없이 빵에 발라먹을수 있었습니다. 그저 맛있는 프렌치를 한끼 먹으려는데 어깨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갈 필요야 없겠죠. 동네 사람들의 조깅/산책 코스인듯한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구요.

빵

조한(Johan)이라는 베이커리에서 받아오는 빵이라는군요. 그 가게는 프랑스가 본점이고 지점이 미츠코시 백화점에 있는데, 바로 구운 빵으로 유명한 집입니다. 그 빵집 근처는 여러번 가봤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는..

사와라(삼치)와 야채 구이

별거 아닌 듯한 생선 요리가 나와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먹었는데, 입안에서 깜짝 놀랄만한 기쁨을 선사하네요. 제 능력이 부족해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순수하게 맛있는데, 그게 과도한 지방이나 씹는 맛도 아니고, 담백하면서도 살짝 단맛이 도는 정도입니다. 야채의 익힘도 적절했는데, 생선과 완전히 일체화 된 느낌이였습니다. 이것이 재료의 맛을 이끌어 내는 요리라고 하면, 제가 보기에 120% 정도는 끌어 낸거 같습니다. 아시는 분의 말에 의하면 삼치가 손질하기는 힘들지만 원래 맛있는 생선이라고 하는데, 제가 경험이 일천해서 제대로 된 삼치를 먹어봤어야죠. 언젠가 싱싱한 삼치를 먹어보고 지금의 경험과 비교해 볼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구마의 가니쉬와 사슴고기

사슴 고기를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미듐레어로 잘 구워져 나왔습니다. 지비에는 아닌거 같았는데 물어보진 않았네요.. 약간 단 가니쉬의 맛이 역시나 놀라웠는데, 자칫 퍽퍽할수도 있는 사슴고기와의 밸런스가 절묘합니다. 쉐프 분의 요리 철학이 궁금해지더군요. 나중에 쉐프분이 쓴 책이라도 읽어봐야 겠네요. 지금 하는 프로젝트가 끝나면요 ㅠ.ㅜ

스즈키(농어) 구이

겉으로 보기엔 별 특이할것 없는 농어 구이인데 대체 어떻게 익힌건진 모르겠네요. 재료가 최상으로 맛있어지는 순간을 포착해내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이 집이 동경에서 야채를 잘쓰기로 유명한 집이라서 그런지 간단해 보이는 작은 양배추조각? 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더라구요.

오렌지 셔벗

보통 디저트 전에 입가심으로 나오는 메뉴입니다. 입가심 용으로 좋았습니다.

수플레

오렌지가 안에 가득 들어있는 수플레입니다. 수플레 특유의 느끼함도 없고, 부풀어 오른 수플레를 아이스크림처럼 떠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양이 좀 많은거 같았는데, 그게 문제 될리가 없지요 ^_^

프티푸

아주 단촐하게 나오는데, 마카롱의 퀄리티는 전문점 수준이네요. 쿠키는 그냥 그냥이였다는..

허브티

동경 어느 레스토랑에서도 허브티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는 거 같습니다. 이집도 물론 예외는 아니죠. 굳이 차 전문점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다는..

딸기 디저트

디저트 메뉴를 따로 주문할 수 있어서 하나 더 시켜봅니다. 딸기 스프라는 이름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예상외로 시럽이 진하지 않게 딸기의 맛을 돋보이게 하는 정도의 역할만 해서, 산뜻하게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메뉴가 5000엔이고 음료수에 디저트를 추가해서 인당 7000원정도 나왔습니다. 이 집의 요리는 정말 맘에 들긴하는데 가격이 싸서인지 식사 메뉴가 달랑 3개 뿐입니다. -_- 돈을 좀더 내고 알라카르테를 추가시켰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다음에는 저녁에 오거나, 아니면 돈을 좀더 써서 알차게 먹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