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양식엔 진짜 엄청 까칠한 편이라 한국에선 한식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잘아는 친구가 홍대에서 괜찮은 양식집을 발견했다고 초대를 했습니다. 2쉐프라는 레스토랑인데, 사실 홍대라는 특수성도 있고 별로 기대는 안했는데, 예상외로 음식이 잘나와서 깜짝놀랐습니다. 이 곳은 2분의 쉐프와 한분의 소믈리에분이 운영을 하는 레스토랑으로 얼마전까진 레드글라스라는 이름의 와인바였다고 하네요. 홍대 4번출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서 찾기도 그닷 어렵지 않더군요. 그 근처는 자주가던 만화책서점이 있기에 잘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맛집이 생겼을 줄이야..
일단 가져간 시게지오 진판델 와인으로 건배
이 집은 컨셉이 코키지 프리라고 합니다. 와인바이고 음식도 나쁘지 않은데 코키지 프리인 곳은 정말 들어본 적도 없네요. 너무 신기해서 물어보니 그래도 장사는 되신다고…
빵
무난한 포카치오 입니다. 빵도 자체로 만드신다고 했던거 같더군요. 요즘 식당들은 아웃백처럼 음식보다 빵에 -_- 신경쓰는 곳도 많은데, 그런데랑 비교하면 약간 부족함이 있긴하죠. 하지만 빵먹으러 레스토랑에 간건 아니니까 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새콤한 식전주
와인을 들고왔기에 사실 따로 식전주는 필요가 없었지만, 격식에 맞게 내주는건 고맙네요.
전채
이 집도 조명은 극악이라 사진이 잘나오진 않았습니다. 왼쪽부터 골뱅이, 연어, 쭈꾸미입니다. 프렌치인지 이탈리안인지 무슨 스타일의 양식이냐고 물어보니까 쉐프의 독창적인 스타일이라고 하시네요. 그날 아침에 장을 보는데 신선한 재료가 보이면 가져다 쓰신다고 그러시더군요. 쭈꾸미와 연어에는 오렌지 소스를 쓰셨는데, 상큼하니 전채로 괜찮습니다. 제철재료도 신선하고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도 좋았습니다.
생선 리조토
주방도 오픈 키친이고 바로 조리한 라이브한 맛이 있었습니다.
돼지 목살 구이
목살은 제가 어려서-_- 홍대 다닐 때 자주 먹던 메뉴입니다. 비싼 재료는 아닌데, 요리 방법이 좋습니다. 목살 특유의 씹히는 맛이 잘 살아있네요. 이런게 한국풍 양식요리겠지요. 일본처럼 이런 요리가 늘어서 한국풍 양식이 확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리고기 로스트
스테이크와 오리고기중 어느걸 선택하겠냐고 해서 오리고기를 시켰습니다. 스테이크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작년에 고베/교토/동경의 레스토랑 투어를 다녀온 후에 스테이크나 프와그라 같은, 고급이지만 어느 레스토랑에도 별 차이없이 나오는 메뉴에 질려버렸습니다. 물론 시그네쳐 디쉬가 스테이크나 프와그라라면 꼭 시키지만, 그렇지 않다면 뭔가 특이한 메뉴에 도전해 봅니다.
그래서 시킨 오리고기 로스트는 안쪽은 적당히 즙이 유지되어 있고 바깥쪽은 바삭하게 잘 구워져 있었습니다. 사실 오리고기는 기름지기 때문에 단맛 소스와 잘 어울리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_^ 단 소스에 매칭해서 내오더군요. 로스팅 상태도 나무랄데 없었습니다. 단맛을 싫어하시는 분이면 소스가 강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는데 저야 별 상관없었습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가니쉬도 조리에 신경쓴 티가 나더군요.
다 먹고 난 후에 오리고기 맛이 워낙 좋아서 뭔가 특별한 비밀이 있을거 같아서 물어보니, 역시나 뭔가 있었습니다. 한국산 오리가 아니라 프랑스에서 수입한 재료를 쓰신답니다. 한국산 오리로는 양식풍의 로스팅이 힘들다고 그러시더군요.
디저트
입가심 용의 혹은 와인 안주용의 소소한 디저트가 나오고, 포만감과 달성감을 느낀후에 나오는 느슨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테이블 위를 오고 갑니다. 소믈리에 겸 서빙보시는 분이 와인을 잘 아시기에 저희 테이블의 대화에 자연스레 끼어드시더군요. 즐거운 대화 도중에 낮익은 음악(elsa의 mon cadeau)이 들려서 물어보니 가게에서 직접 선곡 하신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단골 손님 챙기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 딸기가 신선하다고 나중에 한 접시 더 가져다 주셨습니다.
잘만든 크림뵐레
쉐프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시네요. 능력자이신듯.. 지난번 고베에서 먹었던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날듯한 크림뷀레정도는 아니였지만 허투루 만들었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딸기
화벨이 엉망이라 죄송.. 소스도 있었는데, 사진엔 안보이네요. 여기까지 먹고 이날 코스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3만6천원이라고 하시네요. 코키지도 프리인데 좀 싼게 아닌가 싶더군요. 당일 아침에 장을 보는 것으로 재료비를 많이 세이브하시겠지만요.
서빙이나 음식이나 위치나 어느면에서도 맘에 드는 가게이긴한데, 다만 몇가지 문제점이 보이긴합니다. 원래부터 와인바로 시작한 가게라 인테리어가 레스토랑보다는 와인바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작업은 가능할지 몰라도 격식을 차린 자리엔 안어울릴수도 있겠습니다. 음식 맛이 일반적인 레스토랑의 트렌드와는 다르기에 안맞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구요. 어찌보면 일식 프렌치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이였습니다. 좀 더 다양한 메뉴를 테이스팅 해봐야 제대로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저로서는 이정도면 대 만족입니다. 근처에 살았다면 와인 한병들고 친구들과 알라카르트 먹으러 자주 찾아갔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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