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모아 둔 와인이 이제 마실때가 되었습니다. 와인은 보관 문제로 인해 더이상 모을 생각이 없어서 기존에 사둔것만 털어내고 앞으로는 위스키 위주로 가려고 하는데, 그럴려면 와인 모임을 많이 만들어야겠죠. 올해와 내년 사이에 와인 번개를 몇번 쳐볼까 생각중이고 그 첫스타트를 판교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세렌에서 – 예전 이름은 라 빌란치아였던 곳에서 – 끊었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찾아가는게 쉽지는 않지만, 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오늘의 메인 와인
무똥 94년,지금이 딱 마실때인 보르도 1등급 와인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우여곡절끝에 1등급이 되었고, 맛보다는 라벨때문에 이슈가 되는 와인이죠. 이 날도 3시간쯤 병브리딩을 했는데, 나름 맛있긴했지만 다른 1등급에 비해선 무척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상세르로 스타트
무난한 화이트 와인인데, 이날도 사진을 잊었네요. 저번에 맛있게 마신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시켜봤습니다.
빵
다들 맛있다고 하네요.
전채
지난번에 먹었던 코스와 비교했을때 구성이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재밌는 식재료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작은 사이즈의 딸기인 와일드베리도 귀여웠지만, 큐컴버 멜론이라는 오이맛이 나는 작은 채소도 맛이 독특하더군요. 식용꽃들도 이쁘구요.
요즘 블로그를 보다보면 재밌는 식재료를 쓰는 가게들이 많이 늘었는데(테이블 포포라던가 한남동의 앤드라던가), 한국에서 이런 특이한 작물을 경작하는 곳이 한군데 밖에 없다고 합니다. 워낙 채산성을 도외시하고 실험적인 작물을 재배한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이런 요리를 맛볼수 있게 된 것이죠. 정말 감사한 분이시죠.
다른 식당들과는 달리 세렌의 메뉴에 이런 특이한 식용작물이 정식으로 포함된건 아니고, 저희가 따로 부탁을 드려서 맛볼수 있었습니다. 단기간에는 힘들듯하지만 재배가 안정이 되서 많은 식당에서 정식 메뉴로 올라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메로 구이와 오징어 먹물
메로가 넘 맛있더군요. 바로 전주에 제로컴플렉스에서 오징어 먹물을 이용한 재밌는 요리를 먹고, 세렌에서 또다른 해석을 만났는데, 둘다 매력있는 요리지만, 이해하기는 이쪽이 더 쉬운것같습니다.
흑돼지고기의 24시간 수비드 조리에 오이스터 립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였나 생각이 되는 요리인데, 장시간 진공조리한 돼지고기가 입에서 녹더군요. 오이스터립은 위에 얹힌 허브인데, 신기하게도 진한 굴맛이 납니다. 쉐프님 말로는 밭에서 바로 땄을때 더욱 진했다고하는데, 제가 먹었을때도 아주 진하더군요. 한국의 굴보쌈을 이탈리안으로 재해석하셨다고 하는데 감탄스러운 맛이였네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오이스터립이 좀 더 많았으면 하지만, 재료 수급의 문제나 단가의 문제가 있어서 쉽지는 않을 듯하더군요.
오이스터 립
너무 감탄스러워서 쉐프님에게 오이스터립을 좀 더 청했는데, 남은게 별로 없어서 절반씩 잘라서 주시더군요. 덕분에 신기한 체험을 한번 더 할수 있었습니다.
파스타
세렌의 파스타는 언제나 안정적인 맛이죠. 오늘도 무척 손을 많이 쓰신 듯하더라구요.
양고기와 한우 안심
메인의 고기를 두종류를 내주시더군요. 손이 많이 갈텐데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물론 고기 질도 최상입니다. 이만한 가게가 판교에 있다는건 판교의 축복입니다.
아델피 셀렉션의 오큰토션 20년
슬슬 메인이 끝나고 디저트타임이 왔습니다. 입가심으로 가볍게 위스키한잔 안할 수 없겠죠. 도수가 46.5도밖에 안되서 첫 임팩트는 약하지만, 피트향이 살짝 도는 우아한 맛의 위스키이더군요. 독립병입자인 아델피 셀렉션의 정체성을 좀 알거 같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니 앞으로 좀 모아보면 재밌을 것같습니다.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초콜렛
전에 일본여행때 사둔 초콜렛입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누구나 선물받으면 기뻐할 만한 부드러운 맛의 초콜렛이더군요.
오렌지 셔벗
쉐프님이 준비해주신 셔벗인데 오렌지 맛이 제대로 입니다. 디저트까지 이렇게 잘하시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역시나 대단하시네요.
멋진 모임을 마무리하고 콜택시를 불러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시간도 안걸리고 비용도 강남에서 홍대가는 정도밖에 안들더라구요. 가까운 곳에 이렇게 멋진 맛집이 있으니 종종 찾아뵈야겠습니다.
유명국 양평해장국의 해장국
2차로 선택한 곳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해장국집입니다. 강남에서 이만큼 가성비 좋은 집이 요즘 드물죠. 술을 깨면서 다시 술을 마시는 안좋은 사이클에 걸리게 되는게 문제지만요.
수육
수육은 처음인데 역시나 맛있습니다. 국물이 사리곰탕면하고 비슷한데, 그런 면도 중독적이더군요. 번개가 성공적으로 끝날수록 2차에서 달리는 일이 많은데 이날도 역시 비슷한 패턴이였습니다. 다들 정말 잘마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