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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투쉐프(2chef)에서의 매니악한 와인 디너

어느 – 오타쿠적인 – 분야에서건 마찬가지인데, 계속 한 분야만 파다보면 일반적으로 괜찮다고 하는 수준의 것들엔 별로 재미를 못느끼게 되고, 뭔가 독특하고 매니악한 쪽으로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전에 있었던 번개에서 생떼밀리옹의 맹주인 카농의 올드빈을 열었을때 그런걸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진한 말가죽 향이 매력적인 와인을 저는 맛있게 마셨는데, 주변 분들은 이게 뭐야, 하시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왔을땐 두번의 와인 모임을 기획했습니다. 둘다 홍대의 투쉐프라는 레스토랑에서 열었고, 첫번째는 매니악한 와인을, 두번째는 누구나 다 쉽게 이해할수 있는 와인을 테마로 잡았습니다. 이번 모임은 매니악한 와인 모임이였고 몇몇 와인을 잘아는 친구들과 함께 했습니다.

제가 가져간 1974년 로버트 몬다비 리저브 까베르네 소비뇽

2chef wine dinner

요즘 칠레나 다른 신대륙에선 리저브를 마구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미국 와인에서 리저브급하면 그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플래그쉽 와인을 뜻합니다. 프랑스로 치자면 그랑크뤼급 정도 되겠습니다. 거기다가 몬다비이니 퀄리티는 걱정없겠죠.

이번에 이 와인을 고른 이유는 빈티지가 74년이라 빨리 마시지 않으면 안되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기 숙성형이라도 레드 와인이 30년 넘게 버티는건 대단한 일입니다. 미국의 70년대의 와인은 장기숙성을 생각해서 단단하게 만들기에 아직까지도 무사히 버텨준듯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벌써 36년이나 된 와인이네요 ^_^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올빈 와인은 사실 수량이 매우 한정되어 있는데다 상태가 좋은 넘도 별로 없기에 사실 얼마다 하는 가치를 매기기가 애매한 편이죠. 이날 모임에는 74년생의 친구도 있어서 한층 뜻이 깊었습니다. 자기 나이의 와인을 마신다는 건 재밌는 경험이죠. 여담인데 한국에선 90년대 빈도 올빈이라고 한다고 해서 컬쳐쇼크를 먹었습니다. 90년대면 이제 겨우 마실때가 된 와인인데 말이죠.

메리베일의 프로파일 1997

2chef wine dinner

역시 미국 나파밸리 와인인데, 프로파일은 이 와이너리의 플래그쉽 와인입니다. 황금색 에티켓의 뽀대가 장난아니죠. 요즘은 흰색으로 바뀌어서 아쉽더군요. 로버트 파커가 99점을 줬다가 나중에 89점으로 낮췄다는 전설이 있는 와인이라는데 적당히 마실때가 되서 가져와봤습니다. 마셔보니 89점 맞습니다 ^_^

알마비바 2002

2chef wine dinner

알마비바는 칠레를 대표하는 와인이긴한데, 사실 이번 모임에 좀 안어울리긴 했습니다. 스타일이 평범해서 앞의 개성적인 와인에 묻혀버릴 위험이 있기때문이죠. 아무튼 이름만 들어본 와인을 이번에 마셔볼수 있어서 경험치는 많이 늘어났습니다.

모아서 기념샷

2chef wine dinner

와인을 이해하는 사람들로 모임을 만들다보니 중년남성들만 모이게 되더군요 -_-;; 이런 분위기 별로 안좋습니다. 결국 화제는 정치와 선거이야기로 흘러가게 되구요. 사실 정치는 사람사이의 문제가 대부분 그렇듯 합리적으로 해결될리가 없기에 뭐라뭐라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정치란게 논쟁 자체는 무척 소모적이지만 권력지향적인 남성들에겐 재밌는 이슈인 것도 사실이죠. 저로선 좀 더 현실적이고 발전적인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2chef wine dinner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네요. 최근의 투쉡 번개 포스팅에서 빵이 바뀐걸 보긴 봤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왠만한 집들보다 낫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부띠끄 블루밍보단 못하지만요. 근데 그 집은 빵만 따로 안파려나.. 딴건 별로 만족도가 높질 않아서리..

올빈은 디캔탸쥬해야죠

2chef wine dinner

퍼포먼스적인 요소도 있지만, 올빈은 침전물이 많기에 디캔팅을 안하고 마실 수 없습니다. 이런 전문적인 작업을 믿고 맞길 수가 있기땜에 투쉐프에서 와인 마시기가 정말 편합니다. 딴 집도 코키지 무료는 많지만, 와인을 모르기에 제대로 된 서빙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레드와인을 칠링-_-하는 집도 있었고, 올빈 코르크를 열다가 부수는 경우도 수두룩한데, 이 집 소믈리에 분은 실수하는 경우를 본적이 없습니다. 지난번 카농때도 너무 잘해주셔서 감사했구요.

문어의 카르파쵸

2chef wine dinner

문어의 선도가 좋습니다. 소스가 새콤달콤한데 투쉐프의 전형적인 스타일인듯 싶습니다. 여성분들이 좋아하실듯.

몬다비의 36년된 코르크

2chef wine dinner

이 정도로 젖은 상태의 코르크를 흠집없이 빼주시는 소믈리에 분의 실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라면 절반쯤 깨먹었겠습니다.

섬세한 몬다비부터 시작

2chef wine dinner

첫 모금에서 카시스와 베리향이 느껴집니다. 걱정을 했는데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영빈의 폭발적이고 거친 맛은 전혀 없고 긴 세월동안 천천히 녹아든 탄닌의 맛이 그저 목을 실크 스카프처럼 휘감으며 우아하게 내려갑니다. 와인의 수명으로 보자면 절정을 지난 듯하지만, 올빈의 매력은 오히려 지금이 최고조인 듯 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풀리는 것을 즐기는 것도 재밌습니다. 이 정도로만 상태가 좋다면 올빈은 충분히 경험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돼지고기 항정살 구이

2chef wine dinner

이집의 시그네쳐 요리일까요.. 언제 먹어도 맛있습니다. 다만 이날의 음식은 쉐프분에게 일임했는데, 저희가 레드와인 세병을 가져가서인지 계속 고기만 나오더군요 ㅠ.ㅜ 고기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레드와인만 준비한 저희가 잘못한 거겠죠. 근데 레드와 달다구리 모으기도 빡센데 화이트까지 모으기 시작하면.. 어흑..

고래고기 베이컨

2chef wine dinner

시모노세키에서 공수해 온 고래고기인데, 고래라는 선입견없이 먹어보면 조금 쫄깃하고 탱탱하고 짭짤한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입니다. 쉐프분에게 재료를 맞기면서 알아서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거의 비슷하게 요리가 나왔습니다. 매우 감사욤~

안심 스테이크

2chef wine dinner

이날 모임은 와인위주인데다 중년 남성만 모였기에 -_- 격식같은건 내팽개치고, 코스가 아니라 적당히 알라카르테로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요리가 큰 접시에 나오고 각자 먹을 만큼 덜어먹었습니다. 요리가 큰 접시에 나오다보니 일반 적인 코스보다 더 좋은 재료를 쓴게 눈에 확 띄더군요. 역시 음식은 왕창 만들어야 더 맛있는 법입니다.

사실 첨에 이 모임을 기획할 때는 일본식으로 쉐프와 카운터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 하며 먹고 마시는 것도 생각했는데, 투쉐프엔 그럴만한 공간이 애매하더군요. 뭐.. 다음 기회에 좀더 프리한 모임을 마련해봐야죠.

이쯤에서 두번째 와인인 메리베일이 나옵니다. 얘는 맛은 그럭저럭인데 향이 무척 독특하더군요. 어린이용 시럽같은, 혹은 불량식품같은 향이 풀풀 솟아났습니다. 마실때가 된 와인인데다 개성이 넘쳐서 재밌는 경험이였습니다. 뽀대-_-도 좋았구요. 다시 사라고하면 많이 고민해보겠습니다만..

양고기 스테이크

2chef wine dinner

겉만 잘 익혀서인지 안의 촉촉함은 그대로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먹어본 양고기와는 차원을 달리하더군요. 게다가 어쩜 이렇게 디스플레이도 꽃처럼 이쁘게 만드셨는지. 이런 요리는 만들때 손이 워낙 많이 가는지라 일반적인 코스 요리에 포함시킬수가 없죠. 가끔씩밖에 못오는데다, 얼마 매상도 못올려주는 처지인데 ^_^ 신경써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겨자

2chef wine dinner

어린 양고기라 사실 소스가 그다지 필욘 없었습니다.

민트젤리

2chef wine dinner

저는 처음 보는데 한국에선 양고기를 먹을때 민트젤리가 필수라고 하더군요. 이쁘긴한데, 한국의 양식당에서 나오는 양고기는 그다지 누린내가 안나기에 역시나 별로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알마비바

2chef wine dinner

스탠다드한 카베르네 소비뇽이고 조금 스파이시하더군요. 열대 아일랜드적인 이미지가 느껴졌습니다. 몇년 더 묵혀두면 맛있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뭐 괜찮습니다. 역시나 처음 예상대로 앞의 개성적인 와인들 때문에 묻혀진 감은 있습니다만..

디저트로 크림뷀레

2chef wine dinner

음식이 잘나와서 충분히 배가 불러 디저트는 간단히 먹었습니다. 와인도 맛있었고 나름 성공한 모임이라고 자평해봅니다 ^_^ 다음 기회에도 멋진 와인으로 모임을 열어야죠.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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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카네타카나와의 주민으로서^^ 늘 조용히 보고
    살짝 다녀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와인을 보다보니
    이야기가 좀 튀어가긴 하지만 이번에 한국 들어갈
    때 스파클링 와인을 한병 사가려고 하는데 혹시
    추천해주실수 있으련지요. 여동생과 함께 마시려고
    하는데 모에샹동밖에 모르는 얕은 사람이라…
    바쁘실텐데 죄송합니다. 답변은 해주시면 고맙습
    니다만 안해주셔도 ^^ 늘 포스팅 재미있게 보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히 감사하고 있어요.

    • 다음 포스팅에서 바로 샴페인 추천 들어갑니다 ^_^ 게을러서 업뎃이 계속 늦어지네요.. 참고로 일반적인 샴펜이라면 모에샹동 로제나 모에샹동 넥타가 가격대로 아주 좋습니다.

      • 답변 고맙습니다 ^^
        로제는 마셔 보았고 모에샹동 넥타 체크해 놓을
        게요.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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