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저녁 약속을 잡으려고 했는데 2010년 10월 10일은 특별한 날이라고 예약이 안되네요. 시내의 거의 모든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결혼식 피로연으로 예약 불가였습니다. 그렇다고 날짜를 바꿀수도 없고 해서 어쩔수 없이 이 집으로 예약했습니다. 다찌에서 피로연을 하는 커플은 없을테니까요.
라뜰리에 드 조엘 로부숑은 샤토 조엘 로부숑, 라 따블 드 조엘로부숑에 이은 조엘 로부숑 계열의 중간 쯤에 위치하는 캐주얼한 레스토랑입니다. 록본기 힐즈에 있고, 분위기가 쿨한데 비해 가격이 비싸고 그에 비해 로부숑다운 예술적인 감각이 부족하다는 평판입니다.
냅킨
캐주얼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이 집은 스시집처럼 카운터에 앉아서 서버와 마주보며 식사를 하는 구조입니다. 스시집처럼 쉐프가 알아서 이것저것 쥐어주는게 아니긴 하지만 전문 서버가 가이드해주니 편하게 식사를 할수 있습니다. 로부숑이 일본와서 도입한 시스템이죠. 근데 이런 파격적인 구성이 오히려 이 가게의 인기의 비결이 아닌가 합니다(안그럼 비싼 가격 설정이 이해가 안가는..) 이날 담당하는 서버는 한류 드라마도 좀 알고 한국어도 몇마디 할 줄 알더군요. 궁과 커피프린스를 재밌게 봤다고.. 제가 한국사람이기에 신경써 준 것이겠지요. 일행이 있어서 길게 대화는 못했지만 일류 레스토랑의 서비스라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요.
컵
이미 가을 장식을 해놨네요.. 저는 가을이 온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날은 테이스팅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조그만 요리가 다양하게 나오는 건데, 다 먹으면 양이 – 일반인 기준에서 – 좀 많더군요. 몇개 빼고 단촐하게 먹고, 2차로 다른데 갔으면 좋았을뻔 했는데, 과식하는 바람에 그러질 못했네요. 메뉴 선택에 좀더 고민을 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배가 고프면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지지요.
주방내부
오픈 키친인데 인테리어에 상당히 신경썼더군요. 대부분의 오픈 키친이 그냥 오픈만하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죠..
안에선 스텝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날은 특별히 장사가 잘되는거 같았습니다. 저처럼 예약이 안된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테니까요
고슈와인
일본 와인이죠. 개인적으로 브루고뉴를 더 좋아하긴 합니다만-_- 가격에 비해 하이 퀄리티입니다.
이베리코 돼지 하몽
질이 무척이나 좋지만, 이런건 사실 안주죠.. 고슈와인하곤 좀 안어울리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레드 와인을 시킬수도 없고.. 좀 애매했네요.
빵을 이렇게 줍니다
이 집 바게트는 동경에서도 손꼽히는 레벨입니다… 다른 빵은 제 입에 그냥 그랬지만 제 기준이 높아서 그런거니, 일반분들은 충분히 만족하리라고 봅니다.
연어의 타르타르 시소꽃을 곁들여 캐비어를 올려서
앞에있는게 시소의 꽃인데 그걸 적당히 떼어네서 올려 먹는 요리입니다. 드라이 아이스 연출이 장난아니더군요. 사실 저는 이런 장난 스런 요리는 좋아하지 않지만 연출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먹히겠지요. 진한 시소 꽃의 향기가 넘 좋습니다. 입맛을 돋구는 전채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습니다. 다만 전채로 먹기엔 약간 간이 쎈 편인게 걸리긴했네요. 그리고 캐비어는 정말 맛있는건지.. 언젠간 진짜 맛있는 캐비어를 먹어보고 싶네요.
버섯의 로열 파슬리의 크리와 이베리코 햄을 악센트로
적당한 풍미의 맛입니다.. 버섯도 좋고 재료도 좋고, 하지만 이 컵은 좀.. 먹기 불편하네요.. 따뜻한 요리에 유리컵을 쓴다는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더군요.. 딴집이라면 우와 대단해, 라고 했겠지만, 조엘로부숑의 수준이라고 하기엔 확실히 부족합니다. 연출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그런 듯한데.. 아무래도 록본기의 분위기가 대충 이런거 같습니다. 좀 차분한 곳에 갔으면 좋았을뻔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랑스산 구르누이유의 탄바르 가벼운 크림을 넣어서
이날 가장 문제의 요리가 아닐까합니다. 개구리 뒷다리 요리인데, 특별한 맛은 아니더군요. 그냥 아주 작은 치킨맛이라고 해야 할까.. 독특한 식재료를 쓴건 평가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맛이 특별하지 않은건 좀 그렇습니다. 안에는 개구리 뒷다리를 콩처럼 만든 거와 버섯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자체로는 괜찮은데, 과연 조엘로부숑의 명성에 걸맞는 요리인지 어떤지 매우 의심스럽더군요.
데나가 에비의 라비오리 프와그라의 소스와 양배추의 에튜베와 같이
중화풍의 딤섬류와 비슷한 맛이였어. 에비가 아주 실하고 탱탱한게 들어있더군요. 근데 프렌치다운 맛은 아니였습니다.
호타테, 해초 버터를 올려서 미큐이로
이 것도 일반적인 호타테 요리였습니다. 겉멋만 든게 아닌게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맛이 크게 나쁘진 않은데 지금까지 제가 먹어본 조엘로부숑은 이 정도 레벨이 아니니까요.
천연 스즈키의 프란샤 구이, 이티초크와 함께, 바리글 소스와
스즈키는 송어입니다. 근데 천연 송어는 집근처에서도 먹을 기회가 많아서, 특별히 땡기진 않더군요. 다른 재료와의 앙상블도 멋지고, 손이 많이 갈듯한 요리였고 맛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미디엄 레어로 익힌 와규 바베트 하브가 들어간 사라다와 포테토 퓨레
포테토 퓨레가 시그니쳐 디쉬라고해서 먹어봤는데, 매우 부드럽더군요. 이걸 누가 매쉬드 포테이토라 부를수 있을까요. 에쉬레 버터를 썼냐고 하니 그건 아니라고 하네요. 본점에선 쓴다는 소문을 얼핏 들었는데, 라뜰리에라 그런건가요. 고기의 구운 정도는 적당했습니다. 맛도 좋았고. 근데 미디엄 레어는 역시 칼질이 쉽지 않네요. 담엔 미디엄정도로 부탁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미디엄과 미디엄레어는 완전히 다른 요리니까 그런건 또 의미가 없겠죠. 미디엄 레어정도가 딱 맞았는데 말이죠..
프티데세르
바질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이였던가로 기억합니다. 입안을 청소하는 의미인데, 사실 디저트가 몇코스 정도 나올줄 알았는데 넘 단촐하더군요.. 이거랑 메인디저트가 나오고 끝입니다. 좀 그렇더군요. 이 돈내고 이정도 디저트 밖에 못먹나 싶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화과가 들어간 복잡한 이름의 디저트
수준이 아주 높긴한데, 이것도 과연 조엘로부숑인가 할 정도로 너무 캐주얼합니다. 이 날은 기대에 배신을 때리는 요리만 나오고 있네요. 이 돈이면 그냥 점심때 샤토 조엘로부숑 가는게 훨씬 이익인거 같습니다.. 뭐 하지만, 저녁은 저녁이고 점심은 점심이니 어쩔 수 없겠죠.
수플레
근데 마지막에서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생전 이렇게 맛있는 수플레는 본적이 없습니다. 이거 하나로 오늘의 모든 인상은 역전되었습니다. 부들부들하고 달콤한, 수플레의 한가운데로 점프해서 허우적대고 싶은 식감입니다. 여기에 가운데를 열어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부으면 더할 나위없이 상큼한 맛의 포인트가 더해집니다. 그동안 제가 먹었던 스플레는 스플레가 아니였던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집은 단지 이거 하나만 먹으러 가도 될거 같습니다. 아마 단품이 1500엔쯤하는데 시간대 잘 맞춰서 가면 스플레만 살짝 먹고 가는게 가능할거 같더군요(안될수도 있지만요). 다음에 또 이 집을 오게 된다면 그렇게 가야죠.. 아 진짜 맛있네요. 하늘위의 하늘을 보는 듯한 기분이였습니다.
푸티푸르
오렌지 초콜렛과 쿠키, 생캬라멜입니다. 오렌지 초콜렛안엔 살짝 젤리가 들어있는데, 이게 상큼해서 민트인줄 알았네요. 근데 오렌지껍질을 써서 이런 맛이라고 하더군요. 포인트가 들어있는 초콜렛이 넘 맛있어서 따로 파냐고 했더니, 오리지날 메뉴라 안판다고 합니다.. 캬라멜도 부띠끄에서 파는거랑 차원이 다른 진한 맛이였지만, 역시나 식당에서만 나온다고 하구요..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배부르게 잘먹었었습니다. 연출 덕에 데이트론 끝내주게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 돈이면 더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집에 갈수 있었겠지요. 담에 간다면 디저트만 몇개 알라카르트로 시켜서 먹고 나오고 싶네요.. 좀 한가할때 찾아가서요..
보복이 빠르고 강하시네요. 극찬하신 수플레가 궁금해 미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