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는 쉐프의 가게 아니면 잘 안가는 편입니다. 보통 파인다이닝 식당에 가면 최소 5~6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 넘는 돈을 쓰는데(거기에 x2까지 할때도 있으니..) 모르는 사람 주머니에 들어가는 거보다는, 아는 쉐프분에게 보탬이 되는게 윈윈이니까요. 게다가 맛도 더 보장이 되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항상 그럴수 있는 것은 아니고, 요청에 의해 안 가본 식당에 가야할 경우가 있는데, 그럴땐 매일같이 체크하고 있는 미식 블로그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됩니다. 최근 올라온 미식 블로거들의 포스팅을 분석해보니 테이블포포, 제로컴플렉스, 밍글스 정도가 시야에 들어오더군요. 정통 프렌치 스타일을 표방하는 곳은 저로서는 좀 식상한 느낌이라 독창적인 요리가 나오는 집을 위주로 찾았습니다. 물론 같이 가는 분이 클래식한 스타일이 좋다고 한다면 취향을 존중해야겠지만, 이날은 다행이도 그러지 않았네요.
식당리스트가 정해진 후 그중 하나를 골랐는데, 청담동은 가기가 좀 귀찮았고, 테이블 포포는 전화해보니 그때가 딱 휴가라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제로컴플렉스에 가게 되었습니다. 뭐 다른 가게들도 언젠간 갈 날이 오겠지만, 그렇게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겠죠. 좋은 식당은 시간이 갈수록 맛에 깊이가 생기니까요.
테이블과 잔
아방가르드한 요리가 나오는 식당이라서인지 인테리어도 모던하더군요. 차분하다기보다는 차가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프렌치보다는 좀더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구요. 식당이 탁 트여있는 건 맘에 들었고, 이 날이 금요일인데 사람들로 가득 차지 않은 것도, 가게 입장에선 별로겠지만, 저로서는 여유가 있어서 좋았네요.
가스파쵸
시원한 맛이였습니다. 애피타이저로 괜찮더군요.
화이트 와인
와인리스트를 보다보니 하프 보틀이 괜찮은게 눈에 띄더군요. 적은 인원으로 방문할때는 하프 보틀이 매우 반갑죠. 풀보틀로 전채엔 화이트, 메인엔 레드로 매치하려면 4~6명은 와야 하니까요. 물론 인당 각1병씩 마시는 분들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요.
망고 파우더가 곁들여진 숭어튀김
반죽이 잘 입혀져서 튀겨져서인지 화이트 와인 안주로 좋았습니다. 이 집 스타일이 일품 요리가 작은 접시에 연이여 나오는 스타일인데, 사실 오기전엔 양이 좀 작을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와보니 맛을 충분히 느낄 정도의 양이 나오네요. 참 다행이더군요. 이런 스타일의 단점이라면 안주의 양이 많아서 덩달아 술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일까요. 아무튼 전채부터 스타트가 좋습니다.
갑오징어, 먹물, 옥수수
보기에고 이쁘고 맛도 생각보다 좋더군요. 옥수수를 제가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오징어 먹물하고 같이 먹으니 게장에 밥비벼먹는 느낌도 좀 나면서, 알갱이가 실하게 씹히는 재밌는 식감이였습니다. 국내에서 구할수 있는 재료로 참 창의적인 요리를 낸다 싶더군요. 위에 올라간 하얀 것은 컬리플라워를 얇게 썬 것인데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식감도 좋았습니다.
빵
뭐 괜찮긴했는데, 뽈뽀에서 나왔던 리블랑제 빵이 생각나더군요.
대구, 아스파라거스, 바질
생선요리가 또 나왔습니다. 역시나 맛도 디스플레이도 훌륭했는데, 생선위에 올려진 호박을 보자하니 재료를 얇게 썰어서 올리는게 이 집의 스타일인가 봅니다.
확대샷
안은 수비드로 익히고 겉은 팬에서 구운듯한데, 이런 스타일을 얼마전에 판교의 세렌에서 먹어봤기에 아주 참신하단 생각은 안들었습니다.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고 스타일이 비슷하단 것인데, 파인 다이닝을 자주 하다보면 생기는 불상사가 아닐까 하네요.
등심, 양파, 타이소스
스테이크 메인이란게 아주 특별한 고기를 쓰지 않는 이상 자칫하면 평범해 질수도 있는 요리인데 소스와 디스플레이 덕분에 맛이 살더군요. 제가 프렌치에서 원하던 독창성이란 부분을 잘 채워주더군요.
두번째 와인
하프 보틀입니다. 가격대비로 괜찮았습니다. 이 즈음에 계속 달렸기에 하프 보틀 두병에도 취기가 오르더군요.
사과, 타피오카, 코코넛
타피오카 특유의 질감이 잘 살아있더군요. 사과는 색이 강렬하긴했지만 맛은 진하진 않더라구요. 가벼운 디저트로 괜찮았습니다.
파인애플, 탄산캔디
입안에서 톡톡튀는 맛이 재밌습니다. 뭐 한국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를 추구한다는게 별 의미는 없는 일이지만, 이정도면 괜찮은 수준이네요.
레이디엠의 밀크레이프와 치즈 케익
부족한 디저트는 직접 싸들고 간 케익으로 대신합니다. 주방의 양해를 구하고 꺼냈네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갈때는 항상 디저트를 챙기는것이 만족도를 높히는 지름길 이라는 것을 한국에 몇달 살면서 체득하게 된 것이죠. 레이디 엠은 아무래도 양이 많아서 파인 다이닝 후의 디저트로 가볍게 먹기는 좀 그렇고, 피에르 에르메가 들어오면 그쪽을 자주 들고가게 될 듯한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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